늦은 저녁 집에 돌아가 방에 불을 켰을 때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순간, 하루에도 열 번쯤 마주치는 거울 속 얼굴이 어쩐지 어색하게만 보이는 순간, 출근길 지하철 환승로를 내달리는 구둣발들이 왜인지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늘 지나치는 동네 앞길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나, 어제까지 멀쩡했던 옷가지나 귀걸이가 새삼스레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요. 까닭 모르게 유난히 햇살이 반가운 순간, 어쩐지 영문 모를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은 어떻습니까. 그저 다 기분 탓에 지나지 않을까요?

 

문득 이질적인 공기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순간, 쭉 이어지던 풍경이 갑자기 파편으로 변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어쩌면 그저 피로나 시간 때문일 수도, 우연히 손에 들고 있던 커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전날 밤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잘 잤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며 점심을 거른 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저녁에 만날 반가운 친구나 애인 생각에 들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지랖 넓은 친구의 참견에 기분이 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쌀쌀한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작스런 폭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연분홍 봄꽃 때문일 수도 있고 화장이 잘 되거나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듯, 그저 단순히 그날의 기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 사이, 일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다시 익숙한 풍경의 시간이 이어지지요. 당신이 그 익숙함에 안도할 겨를도 없이 당신 주의의 모든 것들은 익숙하게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일상이란 본래 그런 시간이니까요. 매일의 하루가 흘러가는 방식이 그렇기 마련이니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움직인 적 없던 걸까요?

분명히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잠깐의 이질감은 금세 잊히지요. 하지만 당신이 문득 고개를 돌려 방금 지나간 무언가를 다시 찾을 때, 당신도 보았는가, 묻기 위해 누군가의 옆에 서는 순간, 그에게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 다른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가능성의 이야기가요.

이번에 우리가 다룰 이야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하지만 선명하지 않은 일상 속 작은 틈새에요. 우리는 일상이라는 생활인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누구라도 별수 없지요. 언뜻 보기에 일상의 세계는 실낱같은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하고 균질한 시간으로 보입니다만, 소설은 그런 일상의 틈새를 포착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펼쳐놓습니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았던 시간들, 보지 못했던 곳곳에 얼마나 많은 틈이 자리하는지 드러내지요. 당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신의 발 바로 아래, 당신이 발 디딘 바로 그곳에서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요.

 

소설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쫓아서 우리도 일상을 다시 더듬어 봅시다. 고작해야 몰래 하는 군것질이나 제가끔인 휴양지의 들뜬 저녁에 대한 기대 말고는 일탈도 모험이랄 것도 없는 일상의 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서요. 세미나에서 함께 읽을 여섯 편의 단편을 소개합니다.

1. 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3. 천명관, ‘숟가락아, 구부러져라’

4. 이장욱, ‘올드 맨 리버’

5. 김금희, ‘조중균의 세계’

6.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파우스트는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겠지?’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답하지요. 아니, 훨씬 더 많은 수수께끼가 나올 거라네.’

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수수께끼들은 조금 독특합니다. 단순히 셈하고 답을 내놓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겪고 사랑하고 부딪혀야 하는 이야기의 조각들이니까요. 당신의 해답은,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셰익스피어는 세상에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탄식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정말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은 햄릿과 줄리엣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복수하는 아들이나 사랑을 잃고 목숨을 끊는 연인들은 그 비극이 갖는 무게만큼이나 잘 알려진 것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들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도둑맞은 편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사람들이 늘 지나치면서도 좀처럼 눈을 돌리지 않는 곳에요. 아마 소설이 어슬렁 기웃거리는 곳이 그 근처 어디쯤일 겁니다.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지요. 당신이 미처 일상을 느끼지 못한 그 순간에도 일상은 당신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당신이 지금 선 바로 그 자리가 당신의 일상이니까요.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공간, 낯설고 익숙한 일상의 틈새로 초대합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마 배불리 이야기 나눌 만큼의 자리는 충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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