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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9년 10월 25일
    • 4분

    완전한 상속의 꿈

    오늘은 쿤데라의 마지막 에세이 <만남>을 다룹니다. <만남>에서 쿤데라는 베이컨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군요. 화가 베이컨과 그의 작품에 대해서라면 이미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들뢰즈는 아예 자신의 저술 한 권을 통째로 베이컨의 작품을 해명하는 작업에 쏟기도 했고요. (물론 들뢰즈가 이 작업을 통해 베이컨과 그의 작품을 해명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베이컨의 작품에 기대어 자기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구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쿤데라가 베이컨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일반적으로 베이컨의 작품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쿤데라는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소설가로서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중간중간 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고스란히 쿤데라 자신과 그의 작품에
    조회수 13회댓글 0개
    K
    • 2019년 10월 18일
    • 9분

    미학과 삶

    로베르토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세 인물, 클라리세와 발터, 울리히는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울리히는 클라리세와 발터 부부의 집에 방문하는데, 울리히가 이들의 집을 찾았을 때 이들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피아노 앞에 함께 앉아 연탄하는 모습은 어쩌면 퍽 다정하고 우아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울리히에게 있어 피아노는 그저 그가 끔찍할 만큼 싫어하는 요소들의 집합체에 불과합니다.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는 한심한 작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울리히는 피아노 소리를 두고 ‘으르렁거리다’, ‘고함치다’, ‘울부짖다’, ‘포효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는데, 그가 울부짖는 포효라는 표현을 그리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어느 독자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울리히의 눈에 비친 피아노의 모습은 커다랗고 흉측하게 입을 벌린 땅딸막한 우상이자 닥스훈트와 불도그 사이에서 태어난
    조회수 9회댓글 0개
    K
    • 2019년 10월 10일
    • 5분

    연속성의 의식

    형식이나 화성, 선율 구성 등이 베토벤의 그것과 아주 비슷한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 현대 작곡가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는 대단히 빼어난 솜씨로 이 곡을 완성했습니다. 만약 진짜로 베토벤이 작곡한 곡이었다면 저 유명한 베토벤의 소나타들 사이에서도 걸작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요. 그러나 그 곡이 베토벤의 작품과 꼭 닮았을 만큼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현대 작곡가가 쓴 작품인 이상 누구도 그것을 걸작이라고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베토벤을 닮은 곡을 만든 작곡가에게 돌아갈 찬사 또한 베토벤이 받는 그것과 달리, 기껏해야 모방의 달인이라는 찬사 정도겠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의 소나타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미적 쾌락을 느끼고 있을 텐데요. 똑같은 작품인데 베토벤이 만든 곡은 걸작이고 현대 작곡가가 베토벤처럼 만든 곡은 걸작이 아니라면, 작품이 자아내는 미적 쾌
    조회수 20회댓글 0개
    K
    • 2019년 10월 4일
    • 5분

    스트라빈스키에게 바치는 즉흥곡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제까지 쓴 소설들의 제목을 죄다 ‘웃음과 망각의 책'으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을 정도로, 쿤데라에게 웃음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개념입니다. <농담>이나 <우스운 사랑들>처럼 웃음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단어들을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한 경우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의미의 축제>처럼 작품의 주제가 아무래도 웃음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경우도 빈번하지요.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웃음이 있겠고 뛰어 놀고 있는 아이의 웃음이 있겠지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의 웃음이 있는가 하면 옆에 누가 있든 남들이 뭘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깔깔대는 한 무리 학생들의 웃음이 있을 겁니다. 이런 웃음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발생하는 냉소나 비아냥도 어쨌든 웃음이긴 하겠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식으로 묻지마 행복론을 전파하는 작자가 아닌 이상
    조회수 6회댓글 0개
    K
    • 2019년 9월 27일
    • 4분

    저 뒤쪽 어딘가에

    등장 인물을 빼놓고 소설이라는 장르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소설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의 비중이나 중요성, 또 등장 인물을 제시하는 방식이나 소설 안팎에서 등장 인물이 수행하는 기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인물은 누가 보더라도 소설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설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소설가는 등장 인물과 사건을 통해 주제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저 단순하게 나열하거나 설명하는 글은 누가 보더라도 별로 소설처럼 보이지 않겠지요. 소설은 인물들의 행위를 멀리서 관찰함으로써 어떤 주제를 드러낼 수도 있고, 혹은 행위 안쪽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말과 생각을 통해 주제를 직접 다룰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 단순히 역사나 사회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 아닌 다른 주제를 가질 수 있다면, 이러한 까닭에 그것은 언제나 인물에 관한 것,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것이 되기 마련이지요. 소설의
    조회수 12회댓글 0개
    K
    • 2019년 9월 21일
    • 8분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

    롤링 스쿨의 이번 주제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론입니다. 지난 롤링스쿨에서 ‘방법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보여줬던 탐구의 개척자들을 다뤘던 것처럼, 이번에는 쿤데라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사유와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쿤데라는 흥미롭고 작품을 여럿 발표한 소설가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설이 무엇인지, 또 소설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하는 이론가로 꼽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쿤데라는 특히 소설이 가진 문학적 가치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바탕으로 소설이라는 형식, 소설이라는 매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그에 따르면 소설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보다 실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에 있다고 하는군요.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앞으로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하시지요. 어떤 대상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은 동시에 그것과 비교되는 다른 대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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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8년 8월 14일
    • 7분

    밀란 쿤데라, <정체성>

    오늘 밤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입니다. 쿤데라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눈길을 끄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만 우리는 우선 샹탈과 장마르크에게 초점을 맞춰봅시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따라서요. 소설의 등장 인물인 샹탈과 장마르크는 연인입니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여름, 샹탈과 장마르크는 노르망디 해변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샹탈이 장마르크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고, 장마르크는 이튿날 정오쯤 그곳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샹탈은 장마르크를 기다리며 잠시 호텔 앞 해변가로 산책에 나섭니다. 해변을 거닐며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그녀는 모든 남자들이 ‘아빠’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우자와 함께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남자, 혹은 아이를 둘러업고 가는 남자,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말이지요. 그렇지 않은 남자들은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거나 하면서
    조회수 28회댓글 0개
    K
    • 2017년 8월 31일
    • 3분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늘 밤의 기본 규칙입니다. 우선 굳이 자기소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지요. 물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름이든 나이든 직업이든 취미든 뭐든 밝히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당연히 말릴 까닭은 없겠습니다만,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 하루 밤 거니는 사이에 일부러 돌아가며 이름을 주고받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읽는 것과 함께 걷는 것, 오직 이것 뿐입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은 마치 한 도시를 함께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도시라고 해도 여행 중 서로 다른 골목과 다른 풍경을 지날 수도 있고, 같은 길을 지날 때에도 각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를 수 있지요. 누군가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차림새를 볼 때 누군가는 저들의 표정을 살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사람이 아닌 건물들이나 도로의 신호 체계를, 좌판 상인의 매대를 유심히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모종의 사정이 있는 상황이라면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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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6년 5월 19일
    • 9분

    밀란 쿤데라, <정체성>

    그날 밤 그녀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에 귀를 대었다. 고른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이 편안한 잠, 그녀가 너무도 쉽게 잠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이렇게 귀를 문에 대고 오랫동안 서 있었고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녀가 가장 약하고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라고. 사실 누가 더 강한가? 두 사람 모두 사랑의 영토 위에 있을 때 강한 사람은 사실 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사랑의 영토가 그들 발 밑에서 사라진다면 강한 자는 그녀고 약한자는 그다. 앞서 소개한 바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정체성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다루겠습니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야기는 줄곧 ‘정체성’이라는 열쇠말을 따라 흘러갑니다. 쿤데라가 주연으로 내세우는 샹탈과 장마르크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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