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철학과 사건>
오늘날 우리는 철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뭐 꼭 우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지금 묻는 것은 왜 우리인가, 하는 물음이 아니라 왜 철학인가, 하는 물음이니까요. 그러니 철학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누구여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 질문을 이렇게 다시 물을 수 있겠지요. 철학은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시대의 문제를 인문정신의 위기로 진단하고 철학에서 모종의 해답을 구하려는 시도는 철이 지나 어색해진 유행처럼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고 상투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게다가 해답이랍시고 이런 진단에 이어 인문학 내지는 철학으로 포장한 상술이 은근슬쩍 고개를 내민다면 그런가, 싶어 갸우뚱하던 고개가 도리질로 이어지기 십상이지요. 전설에나 나오는 요순의 때가 아니라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고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사람 목숨 여럿이 우습게 날아가던 시대도 실은 예사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