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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9년 11월 21일
    • 13분

    알랭 바디우, <철학과 사건>

    오늘날 우리는 철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뭐 꼭 우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지금 묻는 것은 왜 우리인가, 하는 물음이 아니라 왜 철학인가, 하는 물음이니까요. 그러니 철학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누구여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 질문을 이렇게 다시 물을 수 있겠지요. 철학은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시대의 문제를 인문정신의 위기로 진단하고 철학에서 모종의 해답을 구하려는 시도는 철이 지나 어색해진 유행처럼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고 상투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게다가 해답이랍시고 이런 진단에 이어 인문학 내지는 철학으로 포장한 상술이 은근슬쩍 고개를 내민다면 그런가, 싶어 갸우뚱하던 고개가 도리질로 이어지기 십상이지요. 전설에나 나오는 요순의 때가 아니라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고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사람 목숨 여럿이 우습게 날아가던 시대도 실은 예사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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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7년 2월 27일
    • 3분

    알랭 바디우, <철학과 사건>: Ch. 5

    마지막 주제는 철학, 다시 철학입니다. 철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조차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 시간에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의 위기와 철학의 위기, 인문 정신의 위기를 슬쩍 묶어서 상품화하는 것도 해마다 돌아오는 봄꽃 노래 유행 같이 흔한 일이 되었고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판적 역량도, 역사를 읽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혜안이나 통찰도 이제 더 이상 철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전유물은 고사하고 낡은 간판 정도가 어울리겠군요, 배부른 고급 취미 내지는 허영에 눈 어두운 사람들만 붙들어 매는 불 꺼진 간판쯤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가혹한가요? 오늘날 철학은 세상 곳곳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다지는 것에 매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철학이라는 상품으로 영리를 꾀하는 똑똑한 상인들의 경우는 제외입니다.) 세계를 해석하는 것, 생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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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2017년 2월 20일
    • 3분

    알랭 바디우, <철학과 사건>: Ch. 4

    지난 밤까지 바디우가 철학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네 가지 영역 가운데 정치, 사랑, 예술을 다뤘습니다. 오늘은 과학에 대한 바디우의 생각을 살펴봅시다. 앞선 대화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타르비가 먼저 바디우에게 묻습니다. 기술과 과학,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맺는 관계를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면서요. 본격적으로 과학에 대한 바디우의 생각을 다루기에 앞서, 타르비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제안하는 하이데거의 관점을 간단하게 짚어봅시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논하는 하이데거의 관점은 아마 이 주제를 다루는 가장 탁월한 통찰이라고 꼽기에 손색이 없을 겁니다. 타르비가 바디우에게 동의 여부를 묻는 하이데거의 관점은, 기술 발전이 인간을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에 빠뜨렸다는 하이데거의 진단입니다. 존재망각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인데, 여기에서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 같군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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