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과 삶
로베르토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세 인물, 클라리세와 발터, 울리히는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울리히는 클라리세와 발터 부부의 집에 방문하는데, 울리히가 이들의 집을 찾았을 때 이들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피아노 앞에 함께 앉아 연탄하는 모습은 어쩌면 퍽 다정하고 우아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울리히에게 있어 피아노는 그저 그가 끔찍할 만큼 싫어하는 요소들의 집합체에 불과합니다.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는 한심한 작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울리히는 피아노 소리를 두고 ‘으르렁거리다’, ‘고함치다’, ‘울부짖다’, ‘포효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는데, 그가 울부짖는 포효라는 표현을 그리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어느 독자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울리히의 눈에 비친 피아노의 모습은 커다랗고 흉측하게 입을 벌린 땅딸막한 우상이자 닥스훈트와 불도그 사이에서 태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