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초기 서양 그리스도교 세계는 압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사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슬람 세계가 정기 교역을 통해 연결된 도시들의 세계였던 반면 서양은 압도적으로 농업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도시들은 규모가 작고 널리 흩어져 있었다. 교역은 대체로 국지적인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규모도 미미했다.  상인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 크지 않았으며 통합된 법 체계, 세금 제도, 관료제, 상비군 등 예전 로마 제국을 지탱했던 하부 구조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카를 대제 통치 통치 하의 프랑크 왕국은 광대하고 강력했으나 같은 시기 하룬 알-라쉬드 지배 하의 압바스 왕국과 비교하면 고래 앞의 새우와 같았다. 왕권은 궁극적으로는 고분고분하지 않고 호전적인 귀족들의 충성심과 협력에 의존했으며, 이들 가운데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영주 가문들조차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는 정부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초보적인 통치 기구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었다. 성직자들 외에 읽고 쓰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성직자들의 식자 능력 또한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이슬람 세계에서만큼 가치 있게 평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고전의 과학과 철학 지식은 물론 그것의 매개 수단인 그리스어도 거의 망각되었다. 교부들의 지식 문화가 이를 대체했으나 이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과거지향적이었다. 압바스 시대의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교 세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로부터 제공받을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0세기 압바스 왕국의 지리학자였던 이븐 하우칼의 오만한 태도에서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를 대하는 이슬람 세계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프랑크 왕국은 노예의 주요 공급처일 뿐 그 외에는 언급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었다.

   

- 리처드 플레처, <십자가와 초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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